[송봉모] 광야에 선 인간
서재/:: 밑줄긋기 / 2012. 4. 19. 02:29
* 광야를 걷는 자세는 십자가를 나르는 자세와 똑같다. 십자가는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안고 가는 것.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매일같이 자신의 십자가를 져야한다고 했을때 사용한 그리스어 바스타제인은 그 첫번째 의미가 '귀중한 것을 품에 안고 가다'이다. 어머니가 아기를 품에 안고 간다고 할 때 이 동사를 쓴다. 십자가를 지고 질질 끌고 가는 것과 십자가를 성큼 안고 가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안고 가는 것은 자신의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십자가를 안고 간다는 것은 다른 이를 비난하거나 책임을 전가시키지 않고, 낙심하거나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인내하는 것이다.
* 일상도의 영성:
야훼 하느님은 오늘만을 살아가시는 '있는 자로서이다' 이시기에 이러한 분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도 '한번에 한 순간씩만 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우리는 월요일에는 오로지 월요일 일만 할 수 있고, 1시에 할 일은 1시에만 할 수 있으며 3시에 할 일은 3시에만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는 한 우리는 일상도의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지시를 어기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이는 "하루만이라면 누구나 다 참을성있고, 이타적이고, 순수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또 혹자는 "매일 그날로 끝을 맺자.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는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될 수 있는대로 빨리 잊자. 지나간 이레 연연하지 않을 때 훨씬 유쾌하고 가볍게 새로운 날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큰 성당의 모자이크 작품 만드는 예술가에게, "굉장한 작업을 하고 계시네요. 엄청 오래 걸릴텐데.." 하자,
"그렇지 않아요. 저는 제가 하루에 할 수 있는 작업량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고 그 양만큼만 합니다. 매일 아침 성당에 오면 그날 할 일을 정하지요. 그러고 나서 그 일만을 합니다. 그러노라면 제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 일은 끝나겠지요."
그렇다. 일상도의 영성을 살아가는 우리는 매일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하루를 살 뿐이다.
우리 조상들은 일상도의 영성을 몸으로 살아갔던 분들이다. 황룡사는 거의 100년에 걸쳐 지었다고 한다. 17년 만에 담장이 완성되었고, 장륙존상은 22년 뒤에, 금당은 32년 뒤에, 9층 목탑은 92년 뒤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유흥준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술에 상관없이 90년 후까지 대를 이어가면서 절집을 지은 정성을 무어라 설명할 것인가? 자기가 계획한 것은 자기 시대에 꼭 결실로 거두어들인다는 전제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반성할 일이다. 우리 중에 누가 90년 후에나 열매맺을 과일 나무를 심겠는가?"
맹인 여류 성악가 킴 윅스 "내 손을 붙들고 인도해주시는 분은 나에게 100미터 전방에 무엇이 있다고 일러주지는 않습니다. 그 분은 그저 내 발 앞에 계단이 있다고만 알려줍니다. 그러면 나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계단에 오르기 위하여 발을 들기만 하면 됩니다. ..."
* 광야는 우선순위를 보게 하는 장소. 시험이나 유혹이 공통적으로 건드리는 것은 우리의 우선순위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다. 우리가 삶의 중심으로 무엇을 택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 광야는 두 얼굴을 보여주는 장소. 한편에서는 고통과 아픔의 얼굴을 보여주고, 다른 한편에서는 하느님 돌보심의 얼굴을 보여주는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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